컴퓨터 믿지 마라 2nd
- 김영준
- 3월 26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3월 27일

2002년 푸껫에서 함께 일했던 금발의 사브리나. 그녀는 스쿠버 강사가 되기 전에 헤어 디자이너로 일했다고 한다. 다이브 숍 뒤뜰에 의자를 놓고 푸석해진 내 머리를 다듬어 주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녀가 바다에서 돌아온 어느 날, 굳은 표정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증상을 들은 나와 동료들은 조심스레 DCS(감압병)를 의심했다. 그 후 그녀의 증상은 다행히도 호전됐지만 불행히도 반복됐다. 심지어 수영장 강습 후에도 비슷한 증상이 발생했다. 당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녀가 고압 산소 치료를 시도해 봤는지는 오래전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강사 생활을 접고 본국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결국 들었다.
동료이자 하우스메이트로 함께 했던 일본인 강사 타쮸. 잘생긴 외모에 인기가 많았던 그는 그의 팬들이 보내준 선물로 주방과 거실이 가득했었다. 그는 겨울철이면 시밀란 리브어보드에서 살다시피 했다. 연이은 리브어보드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면 몸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하소연하곤 했다. 평소엔 느낄 수 없었던 심한 피로감과 사지 관절 부위가 저린 듯 불편한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나름 경험 많은 강사로 내가 아는 한 다이빙 규칙을 보수적으로 철저하게 지키는 편이었다. 그의 증상이 다이빙 때문이란 걸 우리는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왜 그런지는 명확히 알 수 없었다.

최근에 리브어보드 여행에서 겪었던 일이다. 같은 배에 탔지만 다른 팀의 일원이었던 그녀는 오십 대 후반의 경험 많은 다이버였다. 자신의 장비를 훌륭하게 갖추고 있음은 물론, 다이빙으로 유명한 여러 지역을 두루 섭렵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부터 장시간의 이동으로 많이 피곤했을 첫째 날, 그리고 네 번의 다이빙. 둘째 날도 네 번의 다이빙을 마치고 저녁을 들러 다 같이 모였을 때다. 그녀가 갑자기 고통을 호소하며 의자에 모로 누워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배에 의사가 없던 터라 응급처치 강사인 나는 절차에 따라 대응했다. 처음엔 급체나 알레르기 약 부작용을 의심했다. 하지만 그녀와 다이빙을 함께 했던 팀원들의 진술과 정황을 살펴본 바, 다른 원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다리의 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기진맥진했다. 상태는 점점 악화되어 결국 정신까지 혼미해진 상태에 이르렀다. 망망대해의 보트 위에서 갑자기 벌어진 상황인지라 모두들 충격이었다. 응급처치를 계속하며 구조대에 연락을 취했고 의료 시설이 있는 곳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이동하는 내내 다이버를 옆으로 눕히고 산소를 투여했다. 다음날 재압 챔버 시설에서 치료를 이틀간 받고서야 그녀는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적어도 귀국하는 날까지는 그렇게 보였다.

사건이 발생한 둘째 날에 진행했던 네 번의 다이빙 모두 수심도 깊고 조류도 셌다. 특히 두 번째 포인트는 평균 수심이 유독 깊었다. 우리 팀의 다이버들 대부분이 컴퓨터의 NDL을 간신히 지켰을 정도였다. 그날의 진술에 의하면 그녀의 이상 증상은 바로 이 두 번째 다이빙 후부터 시작됐다. 하체 쪽 허벅지 부위가 가렵고 따끔거리면서 얼얼한 느낌이라고 했다. 그녀는 이 증상을 알레르기 반응으로 생각해 약을 복용했다고 한다. 이후 두 번의 다이빙을 더 하면서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사는 그녀가 사용했던 컴퓨터의 다이빙 프로파일을 살펴봤고 큰 문제점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날 밤 응급처치를 하며 내가 의심했던 것을 다음날 재압 챔버 시설의 그 의사도 똑같이 했다는 얘길 들었다. 난원공개존증(Patent Foramen Ovale, PFO)에 의한 감압병(DCS)을 의심해 볼 만하니 귀국하면 정밀 검진을 받아보라는 소견이었다.
자궁 속에 있는 태아는 폐로 호흡하지 않고 태반을 통해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태아는 심장의 우심방과 좌심방을 구분하는 중격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를 '난원공'이라고 한다. 출생 후에는 폐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뚫려 있던 난원공이 자연스럽게 닫힌다. 대부분은 생애 첫 3년 이내에 저절로 닫히지만 성인의 25~30%는 닫히지 않고 남아있다고 한다. 이를 '난원공개존증'이라 한다. 다이버 서너 명 중 한 명은 'PFO'인 것이다. PFO에 대한 정확한 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대부분 선천적으로 발생한다고 한다. 난원공이 열려있어도 혈액이 정상적인 경로를 따를 경우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혈액이 비정상적인 경로로 흐르면 건강상의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다이버의 경우 혈액과 호흡을 통해 체외로 배출되어야 할 질소 기체가 온전히 배출되지 않아 감압병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상황들에 대해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한다. 다만 명확히 알 수 있는 점은 모두 다 다이빙을 했다는 것이다. 최근 겨울철 몇 년 동안 태국에서 다이빙을 했다. 두 달여간 평균 백육십여 회를 했으니 하루에 두세 번씩 매일 다이빙을 한 셈이다. 여러 날 동안 여러 번의 연이은 다이빙을 할 때면 체내에 질소가 많이 쌓였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느낄 수 있다. 짧은 기간에 다이빙을 더 많이, 더 깊이 할수록 그 느낌은 더욱 뚜렷해진다. 한계에 가까이 다가갔음을 온몸으로 감지한다고나 할까. 그런 다이빙 스케줄을 하게 될 때면 나는 다이빙하는 방법과 절차를 나름의 방식으로 조정한다.
호흡기를 물고 물에 들어가는 것을 그저 해수욕장에 놀러 가는 것처럼 여기는 다이버들이 있다. 수중 세계가 익숙해질수록 점점 욕심을 부리기 시작한다. 더 많이, 더 깊이, 더 오래... 물속에서 숨을 쉰다는 것은 그저 몸이 물에 젖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들어가고 싶을 때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오고 싶을 때는 마음대로 나올 수 없다. 안전하게 나오기 위해 다이브 컴퓨터 사용은 강력히 권장된다. 그러나 우리 몸의 작용을 한낱 기계와 숫자로 계산할 수는 없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계가 어딘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니 선을 넘지 않으려거든 컴퓨터 맹신하지 마라. PADI RDP(레크리에이션 다이빙 계획표)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주의 깊게 볼 일이다.
주의 : 현재로서는 여러 날 동안 여러 번 다이빙할 때의 생리적인 영향에 대해 알려진 것이 적기 때문에, 다이버는 여러 날의 다이빙에서 마지막 쪽으로 가면서 다이빙 횟수를 줄이고 다이빙 시간을 제한하는 것이 현명하다.

John. Young Joon Kim
PADI Course Director #471381
Zero Gravity - Scuba Diving Academy &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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